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문단 편집) == 사상 == 그의 사상은 간단하게 말해서 '''이슬람 사회의 모든 법은 [[이슬람법|샤리아]]에 기원해야 한다'''는 '''[[이슬람 근본주의]]'''로, [[쿠란]]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당연히 국가의 지도자는 이슬람 성직자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왕조 타도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세속 정부 위에 신권 정부가 존재하며, 세속 정부는 군통수권을 가진 신권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하려면 전문가회의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당선 후 정책을 결정할 때도 신권정부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 신권 정부의 수장이자 국가 전체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성직자[* '파키'라고 부른다.]는 다른 성직자들이 뽑아야만 하며 또 그들만이 쫓아낼 수 있다. 그리고 18세 이상 남녀는 이 파키를 선출하는 성직자들[* 이들의 협의체를 보통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라 한다.]을 8년에 한 번 선거로 뽑을 수 있다.[* 세속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직선제 투표로 선출하는 4년 중임제로 1회 연임할 수 있다. 국회의원도 4년 직선제+임기제로 유지된다.] 그리고 종교 성향도 매우 극단적인 편이라 시대착오적 발상도 많이 하였고 근대화된 많은 이란인들을 탄압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이란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았던 [[모하메드 모사데크]] 역시 세속주의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개인적으로 대단히 싫어하였다. 호메이니는 "만일 그가 정권을 계속 잡았다면 그는 이슬람에 큰 타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출처 : 유달승 저,《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